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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곳으로 가자밑줄 2021. 4. 2. 15:17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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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어서 일부 익숙한 글들이 있었다. 생각했던대로 술술 잘 읽혀서 대충 읽어도 한참이 걸리는 나도 하루만에 다 읽었다. 에세이는 읽는 건 어렵지 않아도 쓰는 건 무척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 생각 중 남의 생각이랑 닿는 부분이라고 짐작되는 것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게 자그마한 용기 없이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2010년대에 적어둔 독서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는 나한테는 이렇게 따끈따끈한 책을 읽는 게 조금 어색하다.
[프롤로그 -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생활의 요령]
p7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심사위원이 공감 가는 조언을 건넬 때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걸 좀더 저이가 일찍 알았으면 시행착오를 덜 겪었을 텐데 싶어 안타깝다. 그럴 때의 심사위원 평은 그 분야를 모르는 내가 들어도 대부분 수긍이 가는 말이다. 누가 봐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정작 본인은 처음 듣는다는 듯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게 우리 삶의 서러운 포인트 같다. 자기 문제를 남이 먼저 알고 본인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는 사실.
+) 그 서러운 포인트를 확인하기 싶어 지인들한테 부탁해 '거울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을 적어달라고 설문조사를 했던 건데 다들 냉정함보단 따뜻함을 품고 적어주는 바람에 날카로운 심사평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건 자주 봤던 친구도, 가끔 만났던 친구도 동일한 포인트를 짚는 경우가 있어서였다. 처음 들어서 화들짝 놀라기 보다는 만남의 빈도와 상관없이 이렇게나 잘 보이는 포인트였나 싶어 어리둥절했었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는 타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는 데 의미를 찾기보다 이런 귀찮은 부탁도 잘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며 끝이 났다.
[가난하면서 관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p21-22
이들의 쇼핑 사이트 장바구니에는 혹시 더 싼 것이 나올까봐 보류해놓은 아이템들과 최저가를 갱신할 때마다 업데이트되는 상품 목록들로 가득하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니 위시리스트에 물건이 쌓일수록 정작 결제 단계로 가기가 어렵다. 이들은 열 시간을 투자해서 가장 싼 제품을 사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 생각하지만, 십 분을 투자해서 정가에 제품을 사고 나머지 시간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인 소비일 수 있다. 부자인 이들은 돈을 써서 시간을 아끼는데, 가난한 이들은 시간을 써서 돈을 아낀다. 그러니 가난할수록 더 바쁘다.
+) 재작년에 노트북을 구입할 때 약 2달 간 매일매일 최저가를 검색했던 적이 있다. 특정 기간에 적용되는 카드 혜택까지 계산해가면서 최대한 합리적인 소비를 해보겠다고 시간을 열심히도 팔았다. 그 답답한 모습을 보던 엄마는 고민할 시간에 그냥 사서 쓰라고 돈을 쥐어줬고 엄마는 냉장고 최저가를 4달 간 검색하셨다. 서러운 포인트...
부유한 적은 없지만 평소보다 더 가난한 상태인 요즘엔 리셀할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열심히 팔고 있다. 투자한 시간만큼 보상이 있으면 시간을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을텐데 효율이 우수한 건 아니라 여전히 가난하고 바쁜 상태다.
[몰라서 싫어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p37-38
카레와 커리의 맛이 다르듯, 세상은 자세히 알고 나서는 절대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알아차릴 정도로 안목이 생길 때 나만의 특기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취향이란 그런 특기 있는 분야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면서 나 다움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전문가란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고, 그 덕에 남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된 사람이고, 남들이 못 보는 것을 짚어주는 사람이 아닌가.
한 발짝 더 깊이 음미해보지 않으면 섬세한 차이를 영원히 알 수 없고, 차이에 무감해지기 시작하면 인생이 단조로워진다. 우선순위를 정해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형편이 되는 한 적극 체험해보면 좋겠다.
막연한 짐작이 아닌 나의 실감으로 판단하는 경험이 쌓여갈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나라는 사람을 잘 다루는 법도 알아간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단정하지 않기, 의견과 편견을 구분하기,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악한 짓만 아니라면 비난하지 않고 다만 궁금히 여기기. 이런 노력을 통해 제대로 좋아하고 분명하게 싫어하고 싶다. 깊어지고 넓어지며 자주 감탄하기 위해서.
+) 경험과 취향에 대한 지출이 투자라기보다는 낭비라는 생각에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미경험의 부족함을 지레 짐작으로 대충 채워가면서 놓친 순간들이 아쉽다.
[이유 없이 싫은 것에는 상처가 묻어있다]
p63
콤플렉스와 트라우마 때문에 망가지기는 너무 쉽다. 유년의 상처는 깊이 숨어 있다가 멀쩡해 보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한 번씩 튀어나와 놀라게 한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다른 이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일도 덜 할 수 있다. 자신도 납득하기 힘든 부정적 감정이 찾아올 때, 멈춰서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근원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다보면 엉뚱한 이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일을 줄일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면 상처받은 나와 억울하게도 미움을 받고 있는 타인이 드러나며, 그 과정을 객관화할 수 만 있다면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에 가까워진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미워하는 대상은 사실 나의 일부를 비추는 거울이라 말했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 미운 내가 없어야 미운 너도 없겠다.
[그 사람, 영원히 네 위에 있지 않다]
p137
상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내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없고, 내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오해가 쌓이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렵다. 불편한 사람 앞에서는 평소 하지 않을 실수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상사가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는, 상대를 너무 커다랗게 느끼는 마음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상사 또한 저마다 외로운 사람들이고, 사실은 그들도 잘 모르지만 부하 직원 앞에서는 아는 척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신이나 내가 별로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면 덜 주눅들 수 있고, 당신과도 곧 헤어질 거라 생각하면 덜 상처받을 수 있다. 상사를 미워하게 되는 순간 몸담은 모든 상황이 견딜 수 없어지므로, 우선은 상사를 인간적으로는 친근하게(혹은 애잔하게라도) 여겨보도록 노력하며 끝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서 보지 못했던 게 무엇인지, 쪼그라들어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하면 모든 상황에 좀 더 담담해질 수 있다.
+) 코워커님들을 인간적으로 친근하게 느낀 건... 퇴사하겠습니다는 말을 꺼낸 이후다. 어렵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퇴사 얘기를 한 뒤에는 말 한 마디 하기가 그토록 편해졌던 걸 보면 어렵게 생각하긴 했나보다.
상사들 앞에 주눅이 들었다기보다 물량 앞에 주눅이 들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코워커님들께서 나를 불편해했으면 했다. 그것부터 잘못된 게 아닐까 싶다.
[어른스럽게 질투를 다루는 법]
p148
그러니 누군가를 질투하는 이는 무언가 되기를 열렬히 원하는 사람이며, 누군가에게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은 이미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러니 욕먹는 사람은 언제나 욕하는 사람의 우위에 있을 수밖에. 류승완 감독이 만든 영화 <베테랑>이 막 천만 관객을 톨파했을 때 최동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욕먹는 사람이 된 거예요."
더는 회사 내에 질투하게 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퇴사를 결심한 건 그래서였다. 사람은 잘하고 싶어하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미 이룬 사람을 시기하면서도 그의 영향을 깊이 받고야 만다. 관심이 없다면 시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므로. 내가 회사 안에서 시기하는 사람이 더이상 없다는 건 그 안에서 무언가 더 이루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사람은 질투의 대상을 견제하면서 그 불덩어리를 연료로 성과를 내곤 한다. 나 또한 경쟁자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거침없이 자진했었다. 조직 내에서 질투심을 잘 다루고 싶다면, 결국 이런 마음의 회로 자체가 동일한 욕망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누군가 너무 대단하거나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본질은 '나도 하고 싶은 일을(나와 비슷해 보이는) 저 사람이 먼저 해냈다'는 것에 속상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다.
+) 질투의 감정이 없는 건 아닌데 연료로 사용하기엔 연비가 너무 떨어진다. 그래도 예전에는 잘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굳이 일로서가 아니어도 잘하고 싶은 게 없다. 욕망이 없으니 의욕이 없고, 의욕이 없으니 파워 오프 상태로 이렇게 있나보다.
[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는 연습]
p209
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여기고, 주어진 상황에만 만족하는 세계에서 한 발짝 나와보면 이제까지와 다른 풍경이 보인다. 자신의 감정을 대충 처리해버리지 않을 때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너무 쉽게 만족하거나 빨리 체념하는 습관 때문에 잘못 내린 선택이 없었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더 나은 모습이 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사랑을,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알게 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 이유없이 좋고 적당히 나쁘지 않은 게 자주 생기는 편이라 나중에 읽은 '아무튼 떡볶이'랑 부딪히는 부분이긴 한데. 확실히 도전 정신은 바닥인 게 분명하다. 나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조차 게을러서 나도 내가 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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