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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
    밑줄 2021. 3. 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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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사 날짜가 잡힌 그 주에 서점에서 마주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잡지다. 사업 종류가 요식업 및 책방이라는 점이 하고 싶은 게 없는 나에겐 약간 아쉽긴 했다. 다 읽고나서 문득 코로나 시국에 이 가게들을 잘 살아남았을까 걱정도 되기도 했지만 백수인 나보다야 잘 사시겠지 라고 생각했다.

     

    [진저키친 김지은 대표]

    전공이 적성에 안 맞았을까?

    디자인도 좋아했고, 음식도 좋았는데, 디자인은 결국 내가 못하는 일이었다. 그걸 인정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하고 싶은 일에도 종류가 있었나 보다. 하고는 싶은데 노력해도 못하는 일, 하고 싶고 노력하면 언젠간 할 수 있는 일.

    전공을 버리긴 쉽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시각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국비지원으로 틈틈이 공부해 웹디자인 일도 했고. 그렇게 분야를 조금씩 수정하며 1년에 한 번 정도 이직을 했다. 놓고 싶지 않았고, 잘 해내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한 거 같다. 공백기엔 역시 식당이나 카페에서 일을 했다.

     

    +) 전공에 기반해 분야를 조금씩 바꿔가며 이직을 해왔다는 게... 한 문장으로 담길 고생길이 아닌 것 같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쉽지 않은 마음을 동시에 달래가면서 부지런히 이직 준비를 못해본 사람으로서... 반성이 된다.

     

    돈이 아깝지 않은 음식의 기준은 뭘까?

    단지 맛이 있다고 돈값을 하는 음식은 아닐 수 있다. 잘비빈 비빔밥은 정말 맛이 있지만, 집에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집에서 하긴 복잡한 조리 과정을 식당에서 대신 빠르게 해줄 때, 돈을 주고 사 먹을 만한 음식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이다.

     

    +) 집에서 음식을 하면 처음엔 레시피대로 하다가도 점차 조리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 이건 충분한 경험치에서 비롯된 능숙함이라고 포장할 수 없고 그냥 머릿 속에서 섞인 레시피를 간단하게 펼치기 위해 자의적으로 일정부분을 포기하는 게으름에 가깝다. 올해는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워라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경제가 안정된 만큼 돈 이상의 가치를 좇게 됐다는 논리도 수긍은 간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남들과 내 삶을 비교하는 기준이 워라밸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부모님 세대엔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가 비교의 잣대였던 거 같다. 일주일에 6일씩 회사에 헌신하면서도 불행을 느끼는 경우가 적었떤 건, 워라밸이 나빠도 승진만 잘하면 주변의 인정을 받고 부러움을 사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요즘 세대는 워라밸을 기준으로 남과 내 삶을 비교하는 거 같다. 승진을 못해서 뒤처지는 게 아니라, 퇴근을 못하면 뒤처지는 거다. 주 3일을 쉬는 친구, 칼퇴근 직장 다니는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거고.

    워라밸 자체는 좋은 목표일 거다. 다만 그게 나은 삶을 위한 방향이기보다, 남과 날 비교 평가하는 잣대가 된 건 아닐지, 한 번쯤 점검해보면 좋을 거 같다. 어떤 기준이 되었든 비교가 좋은 동기부여는 아닐 테니까.

     

    +) 내 워라밸은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 수도없이 생각해봤지만 이렇게는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다. 내 워라밸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 왔을까. 

     

    [엠프티폴더스 김소정 대표]

    미디어가 퇴사를 조명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은?

    미디어에 비친 퇴사자의 모습들은 너무 진취적이고, 생산적이고, 철학적이거나, 창의적이다. 마치 퇴사가 자기계발 활동 같다. 퇴사 뒤엔 무언가를 이뤄야만 할 거 같다. 하다못해 책이라도 한 권 써야 할 거 같다. 이런 분위기가 안타깝다. 정말 회사가 너무 힘들어서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 마음만 괜히 조급해지는 거 같다. 퇴사는 퇴사일 뿐일 텐데 말이다.

     

    +) 브런치 초기에는 퇴사 관련 책 쓰는 사람의 대부분이 삼성 출신으로 보였다. 자퇴하고 대자보 쓰는 사람은 고대 출신 정도는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타인의 선택이 참고자료 그 이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큰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웬만큼 단단하지 않으면 어느정도는 눈도 귀도 마음도 닫아야 그게 되는 것 같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잠이 부족하면 몸에서 신호를 보내 졸리는 거처럼, 퇴사가 필요하면 마음이 신호를 보내 사표를 쓰는 거라 생각한다. 눈을 감으면 잠이 들고 몸이 회복되듯이, 퇴사 뒤에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나아갈 길이 보일 거다. 부디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길 바란다.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보이려고, 너무 노력하다 보면 퇴사가 회사보다 오히려 무거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 퇴사 후 5개월이 흘렀다. 5개월 앞 자리에는 '벌써'와 '아직'의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예열에 꽤나 시간이 필요해 마음 속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나아갈 길이 보이는 건 너무 꿈 같은 얘기다. 흐르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웠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르페셰미뇽 김희정 대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는 편이 좋다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취미도 남이 정해주는 속도로 하면 싫을 거다. 자기 속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도 취미만큼 즐거울 수 있다. 천천히 하면 뭐든 재밌는 거 같다. 돈이 되겠냐고 지적할 텐데, 그 역시 속도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이지, 직업이냐 취미이냐는 중요치 않은 거 같다.

     

    +) 누구나 그렇겠지만 뭐 하나 빠르게 하는 게 없는 나한테는 시간적 여유가 무척 중요하다. 뭔가 급하게 하다보면 못하던 거 더 못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급하면 다 그냥 하기 싫어지는 지경이다. 그래서 매번 효율적으로 일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은 결국 다 써버리니까 일을 할 때도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긴 힘들었다.

     

    [책바 정인성 대표]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

    대체로 행복하다. 다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행복이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의 범위 안에서 행복하기위해 노력할 뿐이다.

     

    +)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나는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은 일을 찾으려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먼저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말이 더 좋은 건 알겠는데 크게 와닿지는 않아서 차악을 선택하려 한다.

     

    [오혜 유재필 대표]

    회사 일에서도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겠나?

    누군가는 찾을 수도 있을 거다. 근데 그럴 능력이 없었던 거 같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스스로가 공장의 로봇처럼 느껴졌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해도, 출근하고 퇴근하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오늘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는 자신에게 미안했다.

    정해진 규격 안에 수십, 수백 장의 이미지를 반복해 생산하는 작업엔 특별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손만 빠르면 빨리 끝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부러움을 살만큼 편한 작업일 수도 있었겠으나, 내겐 오히려 그런 편함이 무력감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 일할 땐 내가 스스로 불쌍했다. 초과근무를 견디는 역치가 남들보다 낮았던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함을 기대하고 일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행함을 마주하기 위해 일을 했던 것도 아니어서 기대가 없음에도 실망이 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다지 머리는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일을 했다. 절대 내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생각은 배제했다. 자연스레 시키는대로, 주문하는대로만 일을 했고 당연히 일에서 보람이나 의미는 찾지 못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저 난 시키는대로 했다는 알리바이만 잘 챙겨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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