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로 쓴 카피 오늘도 쓴 카피밑줄 2024. 6. 9. 10:40반응형
p7
덜어내려 애쓰지 않고 더하기. 흙탕물 같은 일상의 걱정이든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일이든, 부정적인 마음을 흘려보내기 위해 더 열심히 사랑해서 새로우 채우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밑줄 긋는 일상, 그렇게 모인 문장들, 그 덕에 쓸 수 있었던 문장들이 그랬다. 문장 수집에 뚜렷한 목적이 있던 건 아니었다.
p48
글을 쓰다 보면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는 습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쓸 때는 잘 모르지만 쓰고 난 뒤 퇴고할 때 새삼 보인다. 이럴 때 유의어가 필요하다. 뜻은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로 새롭게 쓸 수 있다. 가량 나는 '생각한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것을 보다, 여기다, 믿다, 추정하다, 판단하다, 가정하다, 살피다, 이해하다 등으로 바꿔 써보면 문장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 때로는 전달하는 바가 명확해져 이해하기도 쉽다. 같은 상품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카피를 쓸 때 나는 그 물건이 놓일 상황과 분위기를, 그것을 쓰는 사람의 감성과 취향까지 고려한다. 때론 카피가 주는 그 느낌에 이끌려 지갑을 여는 이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p79-80
이탈리아 작가인 파비오 볼로의 소설 <아침의 첫 햇살>을 읽고 그에게 완전히 반했다. 한 작가에게 꽂히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렇게 찾아 읽은 <내가 원하는 시간>은 나의 인생책이다. 우리나라에 그의 책이 아직 두 권밖에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다. 그는 일상의 위대함을 사랑하는 작가다. 그가 라디오 방송에서 낭독했다는 <행복이란?>을 읽어보면 그가 무엇을 쓰고자하는 작가인지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행복이란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쫓아가서 쟁취하는 사랑이 아니다.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행복이란 고층빌딩을 오르내리면서 날마다 시험 치르듯이 끊임없이 감행해야 하는 도전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은, 행복은 작고 소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향기는 행복을 느끼기 위한 우리들만의 아주 조그만 예식이다. 행복은 아름다운 노래의 음들 몇 개로만 이루어져 있다. 따뜻한 색깔의 책 한 권으로 족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스쳐지나가는 음식 냄새로, 어떤 때는 고양이나 강아지의 코를 부비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할 때가 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뒤꿈치를 들고 가슴 졸여가며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데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조그만 불꽃놀이면 족하다는 것을, 별과 태양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봄의 향기가 우리를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고, 나무에 기대앉아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걸 배우게 된다. (중략) 우리는 예기치 못했던 전화와 문자를 받는 사소한 순간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깨닫는다.p98
카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대부분의 소비는 '필요'보다 '욕망'에 의한 것이니 카피라이터는 구매 동기를 불러 일으키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건드려주는 게 바로 카피다. 우울하고 답답한 내가 나에게 꽃을 선물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 두 줄짜리 카피가 할 수 있는 위로다.
p194
꿈을 이루느니 어쩌니 하지만.
하루하루는 정말 소박하게 지나간다.<바다의 뚜껑>에 나오는 문장으로, 이번 기획전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대단할 필요 없다. 소박하고 진실 되게, 복잡하게 꼬지 않고 풀어서 쓰면 고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카피도 창조가 아니라 편집이다. 사소한 말에서 좀 다른 느낌을 건지고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 또한 카피라이터의 역할 아닐까?
+) 밑줄 그은 문장들을 다시 들춰보는 일이 거의 없다. 일기도, SNS도, 독후감도 제대로 쓰고 있는 게 없어서일까. 말이든, 글이든 내 마음을 표현하고 뚜렷하게 하는 일에 조금 더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