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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퇴사할 때 선물 받았던 책인데 작년에 펼쳤다가 이번 추석 때 덮었다. 사실 중간에 몇 번 포기했다가 ㅁㄲ 덕분에 얼마 전부터 자기 전 30분 독서루틴 만들면서 간신히 밑줄 친 내용을 옮겨적는다. 어찌저찌 다 읽긴했지만 말그대로 활자만 눈으로 읽어간 비중이 상당해서 약간은 찝찝한 느낌이다. <월든> 읽을 때처럼 한 번 흐름을 타면 이해가 되는 듯 하다가도 잠시 길을 잃으면 도통 방향을 찾질 못했던 독서 경험이라 아쉽다.
p20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 지금처럼 살아있어서 좋은 마음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p122
전형적으로 중년은 달성의 기간이 아니라 깨달음의 기간이며, 또한 성취의 기간이 되어야 마땅하다. 니체가 구분한 단계에 따르면, 낙타는 짐을 잔뜩 싣고 나면 제 발로 일어나 사막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사자로 변신한다. 사자의 임무는 "너는 할지니" 라는 이름의 용을 죽이는 것이다. 이 자기발견의 사자가 용을 죽이고 나면, 용 속에 묶여있던 모든 에너지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된다. 중년이 되어서까지도 여전히 착하게 굴면 이득을 얻고, 나쁘게 굴면 벌을 받게 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뒤처진 것이다. 그들의 유아적 자아가 중년에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적절치 않다.
여러분이 만약 융이 말한 두 번째 단계, 즉 삶의 후반부에 들어섰다면, 여러분의 목표는 여러분이 심장 차크라에서 들은 '옴(OM)'을 불러오는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성취에도 관심이 없고 위신에도 관심이 없는 여러분의 삶을 형성하고 구조화하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 달성과 성취가 무슨 차이일까 싶었는데 맥락 상 달성은 사회 질서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성취는 사회 질서와 상관없이 내 마음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데에서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사회 질서에 반하는 게 젊은이들 같으나 오히려 사회 질서에 적응하여 능력을 내보일 수 있는 게 젊은 시절이고 중년 이후엔 자기 안의 삶의 감각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완벽한 해방(약간 해탈에 가까운)으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흐름의 이야기다. 나에겐 대충 "인생에 철 드는 시기가 단 한 번이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가 됐다. 성인이 되면서 잡았던 방향성이 참으로 완벽하고 빈틈없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닌 경우가 많을테니 인생에서 철은 여러 번 들 수도 있겠다 싶다.
p168
잔잔한 연못이란 인도에서 흔히 요가라는 관념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된다. 요가의 첫 번째 잠언은 다음과 같다. "요가는 마음의 자발적인 활동을 의도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지속적인 유동체로서,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연못의 수면과도 유사하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는 형상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갖가지 형상들은 단순히 시간의 장 속에서 왔다가 가는 이미지들을 투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모두의 아래에는 형상들의 본질적인 형상이 있는 것이다. 그 연못을 완전히 고요하게 만든다면, 즉 바람을 물러가게 하고 물을 맑게 한다면, 그러한 정지 상태에서 여러분은 그 모든 변화하는 형상 아래에 있는 완벽한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p230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p256~258
구체화라 하더라도 가령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에는 오히려 유용하다. 물론 아이들은 이를 구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사람은 그 발달 과정에서 특정한 시점에 도달하면 이런 어린 시절의 구체화들을 다시 깨뜨려야만 한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없앨 수 없으니, 이는 구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상징들이 여러분 속에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미 내면화되었고, 단순히 없애 버릴 수는 없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읽어야 한다. 내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 도리 때까지 기독교를 구체적인 것으로 받아들ㄹ였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그토록 풍부한 상징에 일찍이 노출되었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종교를 포기함으로써, 그 너머로 나아감으로써 얻게 되는 어떤 강력한 힘도 있게 마련이다. 여러분이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말이다. 이는 단순히 '내던진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여러분이 만약 이를 숙고해 본다면 - 즉 여러분이 만약 그 상징들의 의미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은유로 읽는 방법을 배운다면 -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왜 나왔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것은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벗어나면,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의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어야만 한다.
(중략)
일상적인 삶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무엇이든지 성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세속적인 맥락에서 우리는 대립자의 쌍들 - 가령 원인과 결과, 득과 실 등등 - 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여러분의 성스러운 공간은
여러분이 자신의 모습을
거듭거듭 찾을 수 있는 장소다.여러분이 진정으로 성스러운 공간이라든지, 피난처를 지니려 한다면, 그곳은 우선 황무지가 아니어야 하며, 암브로시아 - 외부로부터 여러분 안에 불어넣는 기뿐이 아니라, 여러분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기쁨 - 의 샘이 있는 어떤 활동 공간, 즉 여러분이 자신의 의자와 자신의 의도와 자신의 소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됨으로써, 비록 작더라도 하늘나라가 거기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모든 사람은 - 본인이야 알건 모르건 간에 - 그런 공간을 필요로 한다.
+) 요가는 해본 적이 없으니 내 머릿속에서는 비슷한 카테고리에 함께 있는 명상을 떠올리면서 이해했다. 스무살 때 들었던 불교 수업에서 하루 종일 명상을 실습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배운 방법은 눈을 감고 누워서 정수리부터 시작해 내 몸에 테두리를 천천히 그리는 식이었다. 중간에 분심이 들었다는 걸 인지하면 다시 정수리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고 진행하는 게 핵심이었던 것 같다.
쉽게 높아지고 쉽게 낮아지는 마음이 어떤 대상을 오해 없이 바라보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그 순간이 특별한 기억이고 설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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